일본에서 음악학교 졸업 후 음악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5년 정도 음악하다
꿈을 접고 국비교육 받으며 취업하려고 썼던 블로그.
일본 SI 기업에 취직한 후 방치된 지 벌써 4년이 지났네.
설마 또 일본에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렇게 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 줄이야.
일본에서의 첫 현장은 일본 연금 공단,
꽤 낡은 시스템인 스트러츠 프레임워크를 스프링 프레임워크로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이때는 아직 스프링부트가 막 쓰이기 시작한 시점이라서 스프링부트가 선택사항에는 없었다.
XML 설정과 JSP, 지금 생각하면 이 때가 있었기에 스프링부트를 더 잘 사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미츠비시 UFJ 은행 해외사업부, 국내사업부에서
IBM 클라우드 플랫폼 위에서 자바스크립트로 목 서버도 짜보고
스프링부트로 오픈 API 도 개발했었고,
NTT 도코모 클라우드 사업부에서 뜬금없이 앵귤러로 프론트엔드 개발도 해보고,
핀테크 기업에서 코프링부트로 오픈 API 도 만들었다.
그동안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에서 일본까지 와서 같이 살아준 지금의 아내와 추억 만들기,
코로나 터지기 한 달 전에 운 좋게 아내와의 결혼식,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이 우리 부부에게 찾아왔다.
코로나로 태교여행은 도쿄 근교의 카루이자와로 떠났고,
도쿄에서의 삶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면서 한국 국적의 아들을 과연 일본에서 키우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를 위해 일본까지 와준 아내가 언어의 장벽과 외국인이라는 차별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내가 출산을 위해 한국 들어가기 한 달 전,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운 좋겠도 해외송금이 주력 상품인 모인이라는 한국 핀테크 스타트업에 이직이 결정되었다.
4년 정도 지낸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너무 사랑스러운 아들이 태어났고, 친인척이 힘을 주었다.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은 탓에 대출이 승인이 되지 않아 집도 없고 차도 없이 처갓집에 살고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것에 후회는 없다.
어느새 아들은 100일이 되었네.
사랑하는 아내, 아들 아빠가 더 힘낼게.
블로그도 이제 다시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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